목차 Ⅰ.6 25 전쟁의 배경 Ⅱ.전후의 현실과 문학의 분열 Ⅲ.종군문학 Ⅳ. 전쟁과 소설 Ⅴ.반공주의와 한국문학 Ⅵ. 기성세대와 신세대 작가 Ⅶ.한국 전후문학(1950년대문학) 희곡 본문 Ⅰ.6 25 전쟁의 배경 한반도는 동북아에서의 전략적 가치 때문에 주변국들의 침략의 대상이 되어왔으며 주변국들의 힘의 각축장이 되어 왔다. 중국 일본 소련 간에 일어난 아시아에서의 주도권 쟁탈전은 누가 한반도에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느냐가 언제나 핵심적인 쟁점이 되어 왔다. 종전이후 한반도에서 시작된 미 소 군정은 남북 간의 이질현상을 점차 심화 시켰고 이런 가운데 미 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고, 미 소간의 냉전이 날로 심해졌다. 결국 유엔 총회의 결의에 따라 선거참여를 거부한 모든 정치단체를 배제하고 유엔 한국임시위원단의 감시 하에 1948년 5월 10일 남한만의 단독 총선거가 이루어 지고 북한은 소련의 비호아래 1948년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립을 선포하였다. 단독정부 수립이후 이질적 체제에서 오는 대항의식과 경쟁심, 적대감들이 가열되어 해방 후 한동안 남북간 왕래할 수 있었던 38선 접경지에서는 약탈, 납치, 보복등 분쟁이 빈발하게 되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6.25전쟁이 시작되게 되고 남침 3일만에 서울이 함락되고, 유엔군이 참전하였지만 여전히 전투력의 열세를 만회하지 못하고 낙동강 방어선까지 물러나게 된다. 이후 인천 상륙작전을 통해 다시 서울을 수복하고 북진작전을 전개하여 압록강과 두만강 선까지 진격하게 되지만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밀려 내려오게된다. 휴전협상은 1951년 7월 10일 부터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조인될 때까지 2년간 지속되었다. 그런데 유엔군과 공산군은 협상 중에도 치열한 전투를 계속 전개했다. 유엔군은 협상과정에서 주요 쟁점사항이 해결되지 않을 경우 이를 타개하는 수단으로, 그리고 공산측에게 휴전조건을 강요하는 수단으로 군사작전을 전개했다. 반면에 공산군은 휴전협상 과정에서 전력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전력 증강을 도모하고, 일부 빼앗긴 진지를 탈환하는 등 군사력 과시를 통해 휴전회담에서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전투를 실시했다. 이렇게 됨으로써 '일면협상, 일면전투'가 정전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전쟁을 사실상 주도한 미국과 소련은 각각 한반도에서의 전략적 이익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상대의 의도를 확인하였고, 이로써 이 지역에서 냉전구조의 균형을 파괴할 수 없다는 현실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키워드 현대문학사, 문학사, 분열, 전후, 현대 |
2017년 8월 23일 수요일
현대문학사 전후의 현실과 문학의 분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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