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28일 목요일

미술사입문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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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ne Magritte
르네 마그리트는 다음과 같은 단어들과 같이 언급된다. 초현실주의, 데페이즈망, 키리코. 이 단어들은 르네 마그리트에 대해 알기 위하여 인터넷의 기사와 칼럼, 마그리트에 대한 논문을 읽어볼 때마다 반복해서 나오는 단어들이다. 그렇지만 내가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을 볼 때마다 가장 크게 느끼는 것과 그에 대해 분석하는 글은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은 언제나 구도적으로는 안정적이라는 점이다. 저울로 예를 든다면 양쪽의 무게가 정확히 같아서 수평을 이르는 상태와 같다. 캔버스의 정 가운데에 파이프 그림이 위치하거나 사람이 위치하고 있는 것처럼 그의 그림을 보면 마치 그림의 대상과 내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 가운데, 일직선이 되는 지점에서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 느낌을 준다. 나는 마그리트가 이렇게 그림을 그린 이유에 대해 어떤 물건을 일상적인 환경에서 이질적인 환경으로 옮겨 그림을 보는 사람에게 심리적 충격을 가하는 데페이즈망 기법을 더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은 한다. 그러나 그 생각은 두 번째로 든 생각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다른 것이다. 그것은 바로 그의 어머니가 만들어낸 '심리적 불안감' 때문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의 어머니는 마그리트가 14살 때인 1912년 Sambre강에서 자살하였고 잠옷으로 얼굴을 감싼 채 발견되었다고 한다. 가장 감정적으로 예민하고 인격과 사고방식이 성립되어가는 시기인 14살에 어머니가 하루아침에 자살한 것이다. 하루아침에 가장 가까우면서도 영원히 함께 할 것 같았던 어머니가 사라지면서 마그리트는 큰 충격과 불균형의 불안정함을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원래부터 인간은 대칭 또는 균형을 이룰 때 안심한다고 하는데 나는 마그리트가 균형적인 그림을 그린 이유가 어린 나이에 받은 충격과 그로 인해 생긴 트라우마로 불균형에서 오는 불안감을 피하기 위한 것 이었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그의 어머니가 자살함으로써 마그리트는 한 가지 더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고 싶다. 먼저 그에 대한 글을 읽다보면 그는 화가라는 이름 대신 '생각하는 사람'으로 불리길 원했을 정도로 끊임없이 존재와 세계에 대한 의문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한 의문을 우리에게도 던지기 위하여 고개를 갸우뚱 하고 생각하게 하는 그림을 그린 것이다. 여기서 나는 마그리트가 많은 의문을 갖고 사색에 잠기곤 했던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어머니의 존재가 하루아침에 사라지게 되면서 존재와 존재하지 않음에 대해 큰 차이점을 느끼게 되었을 것이고 그에 대해 남들보다 더 큰 인식과 관심을 가졌으리라 생각했다. 또한 그의 어머니가 왜 자신과 가족 그리고 생을 포기하면서 까지 자살을 택하였을 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했을 것이고 이렇게 의문을 가지고 사색에 잠기는 습관이 나이가 든 후에도 계속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앞에서 말한 이 두가지를 모두 보여주는 듯한 그림을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1928년에 마그리트가 그린 그림으로 'Attempting the impossible불가능한 것에 대한 시도'이다. 이 그림을 보면 두 사람은 완벽한 대칭의 거리에 마주보고 서 있는 것처럼 보이며 마그리트는 완성되지 않은 여인을 그려내고 있다. 이 작품에 대해서 해석은 여러 가지가 있다. 실체에 대한 모사, 이상에 대한 동경, 현실에서 성적자유를 합리화하는 이론이나 행위는 죄악 등의 여러 가지로 해석을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이 작품은 마그리트가 그의 죽은 어머니를 그려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부재로 인하여 느꼈던 불균형과 불안감의 트라우마가 이 그림에서도 나타나면서 대상을 캔버스 정면에 위치시키고 어머니와 나를 대칭되는 곳에 위치시킴으로써 구도적인 안정감을 느꼈던 것처럼 보이고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어머니의 부재를 존재로 바꾸고자 하는 시도를 하며 다시 존재하게 할 수는 없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과 바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Attempting the impossible>, 1928
다음은 마그리트가 1963년에 그린 그림으로 'La grande famille위대한 가족'이다. 바다 위로 커다란 새가 날아가는 듯 한 모습의 그림으로 새가 있는 듯 없는 듯 확정지어 말하기 어려운 그림이다. 실제로도 이 그림은 '새는 존재하는 듯, 존재하지 않는다'의 식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부재하는 것(새)이 실재한다(새 모양의 하늘)는 생각은 우리의 습관과도 같은 인식의 태도에서 나오는 것이며 마그리트는 이 작품을 통해 하나의 사물이 두 개의 사물로 인식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줌으로써 우리의 인식 태도에 의문을 던진다는 것이다. 이런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마그리트는 일부러 일상적인 사물을 제시했고 그림을 보게 되는 사람은 눈을 통해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인식하여 '참'이라고 믿었던 행위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되는 계기를 얻는다고 한다. 마그리트는 어떤 존재든 고정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모든 이미지는 역동성을 가진다고 보았고 그것을 캔버스에 표현하려 했다고 한다. 그래서 내부와 외부가 함께 존재하는 이중적 이미지를 보여주면서 하나의 사물에 잠재하는 또 다른 성질인 이중성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라고 한다. 또한 하늘을 보는 행위와 새를 보는 행위가 동시에 캔버스에서 일어나게 되면서 시간을 두고 순차적으로 일어나야 할 사건이 동시에 일어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시간의 절대성이 희미해지는 효과를 낳는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해석과 더불어 앞서 말한 '어머니의 자살'이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며 균형과 마그리트가 던지는 의문의 맹점에 집중 했고 여기서도 그 점이 잘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상은 캔버스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으며 좌우의 균형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있고 여기서도 역시 '존재'라는 점에 중점을 두고 그림을 그렸다는 점을 통해 알 수 있다.
<la grande famille magritte>, 1963

하고 싶은 말
좀 더 업그레이드하여 자료를 보완하여,
과제물을 꼼꼼하게 정성을 들어 작성했습니다.

위 자료 요약정리 잘되어 있으니 잘 참고하시어
학업에 나날이 발전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
구입자 분의 앞날에 항상 무궁한 발전과 행복과 행운이 깃들기를 홧팅

키워드
마그리트, 그림, 어머니, 생각, 의문,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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