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26일 토요일

레포트한국과학자 조사 `최무선`

레포트한국과학자 조사 `최무선`
[레포트]한국과학자 조사 '최무선'.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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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화포 발명가 '최무선'
최무선이 태어날 당시 고려는 원나라의 사위나라였다. 고려 말에 왜구가 쳐들어와 백성들을 해치고 재물을 빼앗아 가는 사건이 많아지고, 광흥 창사였던 아버지를 통해 왜구의 노략질에 의한 피해를 절감시키기 위해 최무선은 화약 무기를 만들어 이들을 물리칠 결심을 했다. 그 당시 고려에서는 중국으로부터 화약을 들여오긴 했으나 화약을 만드는 방법은 전해지지 않았으며 중국에서 화약을 만드는 방법은 중국에서도 매우 중요한 군사정보였다. 그리하여 최무선은 중국사람도 만든 화약을 우리라고 만들지 못하겠느냐 라는 생각을 가지며 화약을 만드는데 헌신하였다.
청년의 최무선은 군기감에서 관리로 일했다. 군기감란 무기를 만들고 보관하는 일을 하는 관청이었는데 최무선은 군기감에 보관되어 있는 화약을 보았으나 그 양은 극히 적었다. 그리하여 최무선은 연구를 시작했는데 화약을 만들기 위해서는 숯과 유황, 그리고 초석을 섞으면 만들 수 있다고 알게 된다. 그러나 숯과 유황은 쉽게 구할 수 있었으나 초석을 만들고 방법은 알지 못했다. 최무선이 화약연구에 매진한지 10년이 흘렀다. 그러나 최무선은 초석을 만들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리하여 최무선은 중국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마음을 먹고 중국말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예성강하구에 가서 오는 중국인들에게 쉴 곳과 음식을 제공하고 초석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 물었다. 그러나 중국인들에게 화약 만드는 방법은 중요한 군사정보였고 새어나갈시 그 사람은 처벌을 받게 되니 말을 하는 사람은 하나 없었다.
그러나 최무선이 만난 사람 중 하나인 이원이라는 사람에게 초석의 제작 방법을 알게 된다. 20여년을 하루같이 화약 만드는 법을 알아내기 위해 노력한 끝에 최무선은 독자적으로 마침내 화약을 만들어 내고 말았다. 최무선이 화약을 만들어내고 1372년 이었다. 최무선은 이 사실을 공민왕에게 말하고 화약만으로는 소용이 없으니 화약의 힘을 견딜 만한 여러 가지 무기가 있어야 된다고 한다. 최무선은 먼저 화살을 이용하는 방법부터 시작했다. 그러나 이 방법은 16년 전에 이미 시험해본적이 있었기 때문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최무선은 지금의 대포에 해당하는 총통도 중국 것을 본떠서 만들었다. 그러나 화살이나 창 같은 가벼운 무기를 멀리 날려 보내는 데에는 별 문제가 없었으나 돌이나 쇠구슬같이 파괴력이 크고 단단한 무기를 쏘아 올리는 총통을 만들어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총통이 화약의 폭발력을 이길 수 있어야했다. 그리하여 최무선은 무기를 만들기 위해 화통도감과 같은 정부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나 쉽지 않았다. 대부분의 관리들이 최무선을 모함하고, 화통도감의 설치를 반대했다. 그 당시 화약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최무선뿐이었으니 군기감의 관리가 커다란 권력을 갖겠다는 속셈으로 단정했다.
그러나 최무선의 끈질긴 노력으로 왕을 설득하고 1377년 화통도감이 설치된다. 최무선은 화통도감의 가장 높은 관리가 되었다. 최무선이 화약을 만드는데 성공한 후 5년 만의 일이다. 화약을 넉넉하게 확보한 최무선은 화약을 이용한 무기를 만드는 데 더욱더 온 힘을 쏟았습니다. '화기' 란 화약의 힘으로 탄알을 쏘는 병기를 통틀어 이르는 말인데 최무선이 만든 화기 가운데 하나가 바로 주화였다. 이밖에도 대장군, 이장군, 삼장군, 육화석포, 화포, 신포, 화통 등의 총포를 만들었다. 최무선이 새로 만든 무기들에 대한 기록은 '태조실록'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최무선에게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화약은 전쟁에서 처음으로 이용한 '진포대첩' 이다. 왜구들이 500여척의 배를 끌고 지금의 군산인 전라도 진포에 쳐들어 왔다. 왜구들은 그동안 여러차례 고려에 쳐들어올 때마다 고려 군사들을 손쉽게 물리쳤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도 왜구들은 고려의 군사력을 업신여겼다. 그러나 화포가 있는 고려는 달랐다. 고려조정에서는 원수에 나세를 부원수에 최무선을 임명하고 100척에는 최무선이 화통도감에서 만든 화약과 화포들이 실려 있었다.
그 당시 바다에서 적과 싸울 때는 대체로 세 가지 전술을 사용하였다. 첫째는 아군의 배로 적의 배를 들이 받거나 부딪히는 당파 전술을 주로 사용하였다. 당파전술이란 적의 배에 구멍을 내서 적의 배가 움직이지 못하게 하거나 가라앉히는 방법이었다. 그래서 배의 앞에는 두꺼운 철판으로 만든 뾰족한 뿔이 달려있었다. 둘째는 적의 배에 접근하여 기어올라 백병전으로 적의 배를 점령하는 전술이며, 셋째는 적의 배에 접근하되 밀착하지 않고 불화살이나 불덩이를 쏘아서 적선을 불태우는 방법이다. 당시 왜구들은 주로 두 번째 전술을 사용하였고, 우리나라는 당파전술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진포대첩에서는 최무선이 만든 화포를 이용하기 위해서 아군의 배로 적의 배를 부딪쳐서 가라앉히는 것이 아니라 아군의 배에서 화포를 쏘아 적의 배를 가라앉힐 수 있도록 만든 배였다. 새로 만든 배들은 적의 배에 가까이 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바다에 가라앉을 위험은 없었으나 대신에 무거운 화포를 싣고 발사할 때 일어나는 충격을 이길 수 있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튼튼하긴 하였으나 느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적의 배를 한곳에 몰아넣은 다음 화포를 쏘는 ' 망치와 모루' 라는 전술을 펼치게 된다. 왜구들의 500여척의 배는 모두 바다 속으로 가라앉게 된다. 그리하여 고려는 40여년의 복수를 진포 대첩에서 크게 하게 된다. 그 이후 고려 조정에서는 왜구의 소굴인 쓰시마 섬에 쳐들어가 아예 왜구의 뿌리를 뽑기 위한 왜구 토벌 책을 마련했다. 1389년 최무선이 개발한 새로운 무기로 무장한 전함 100척을 이끌고 쓰시마 섬으로가 왜구의 배 300여척을 토벌한다. 그 후 왜구들이 고려를 약탈하는 것을 비밀리에 돕던 일본은 스스로 고려의 신하나라가 되기를 원했고 왜구들이 노예로 잡아갔던 고려 사람들을 돌려보내는 등 그동안 저지른 잘못을 사과하였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까지는 최무선이 화약과 무기를 만들어 고려의 군사력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진포대첩은 우리에게 단순히 왜구를 무찌른 전쟁이상으로 큰 의의를 갖게 한다. 진포대첩은 세계해전중 화포를 가장 먼저 사용한 전투였으며 화력기동전술과 해상 포격전의 시초를 열어 놓은 역사적인 해전이었다. 지금까지 세계 최초로 화포를 사용하여 적선을 격침시킨 해전으로는 레판토 해전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고려의 진포대첩이 발발한 뒤 약 191년이 지난 후의 일이다. 즉 고려는 서양보다 191년이나 앞서 화포와 포함을 개발하고 실전에서 화포를 사용했던 것이다. 또한 진포대첩은 왜구의 침입을 저지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진포대첩으로 인하여 왜구의 기세는 꺾이게 되고, 고려는 진포대첩의 여세를 몰아 관음포대첩, 대마도 정벌 등 왜구 토벌을 강행하였다. 이로써 임진왜란 전까지 왜구가 다시 우리나라에 대규모로 침입하는 일은 사라지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진포대첩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의 전술의 모델이 되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장군은 진포대첩과 같은 전술을 사용하여 일본군을 물리쳤다. 당시 일본군의 주력함은 왜구의 배와 동일한 관선이었고, 일본 수군이 가지고 있는 화약무기는 서양 사람들이 개발한 조총이 유일한 것이었다. 그러나 조총은 육지에서는 효과가 있지만 바다에서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조선 수군은 일본의 관선보다 월등하게 크고 견고한 함선을 가지고 있었고 각종 화포도 보유하고 있었다. 이에 조선 수군은 진포대첩에서와 같이 함포사격을 통해 일본 수군을 전멸시켰다. 진포대첩의 전술은 200년 후에 일어난 임진왜란에서도 사용될 정도로 선진적 전술이었고, 또 조선 수군의 전술의 모델이 되었던 것이다.
최무선의 화약과 무기 발명은 고려의 역사에 큰 획을 그었으며 또한 무기기술의 발전에 크나큰 기여를 했다. 또한 고려시대 뿐만 아니라 그 후 조선에서도 최무선의 영향력이 존재하고 있었다. 과연 최무선의 화약, 화포발명과 우리나라를 지켜주신 장군, 독립투사 분들이 존재하지 않았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본다.

하고 싶은 말
좀 더 업그레이드하여 자료를 보완하여,
과제물을 꼼꼼하게 정성을 들어 작성했습니다.

위 자료 요약정리 잘되어 있으니 잘 참고하시어
학업에 나날이 발전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
구입자 분의 앞날에 항상 무궁한 발전과 행복과 행운이 깃들기를 홧팅

키워드
최무선, 왜구, 고려, 진포, 진포대첩, 대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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