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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신라 의학 발달의 토대가 된 신라의 군진의학 '몸, 질병, 권력: 통일전쟁기 신라의 군진의학' 감상문 목차 1. 내용요약 2. 감상문 3. 참고문헌 1. 내용요약 국가 권력은 개인의 몸에서 산출되는 노동력에 가장 관심을 가졌는데 전근대 동아시아 사회에서 부역과 군역으로 존재하는 역을 부담했던 계층은 주로 농민이었다. 그러므로 군역이란 권력이 '농민의 몸'을 '군인의 몸'으로 전환시켜 관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에 대한 질병의 치료는 군사 의학을 통해 이루어졌다. 다시 말해서 군사 의학은 전쟁이 일어났을 때 군대 내에서 대규모로 발생하는 각종 부상자와 질병에 걸린 사람들을 관리했는데, 이를 군진의학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군대는 많은 인원이 밀집 생활을 하기 때문에 각종 질병이 빈번했고 대규모 전염병은 특히 전력에 큰 차질을 초래하기 때문에 국가 권력은 전쟁기간에 개인의 몸에 대해 가장 관심을 가졌다. 전쟁기간은 어느 특정한 질병이 기승을 부릴 수 있는 조건들이 극대화되는 시기이기 때문에 병사들의 건강을 관리하는 것은 중요하다. 한편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전쟁기간 동안 군진 의학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전쟁이 끝난 후 민간 의학의 발전까지 이룩하기도 한다. 여기서는 7세기 중엽 신라의 통일 전쟁 때를 예로 들어 이러한 양상을 살펴보고 있다. 장기간의 국제 전쟁으로 인해 7세기 중엽 신라 사회는 면역 체계가 아주 열악했으므로 신라 지배층은 통일 후 각종 대민 의료 정책을 수립하게 되었다. 이는 국가 권력이 개인의 노동력에만 관심을 가졌던 것에서 더 나아가 일반 민의 건강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공공 의료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점에 있어서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국가 권력이 개인의 몸을 분류하였던 방식과 군역을 부담한 이들의 질병을 어떻게 치료하고 관리했는지 살펴보자. 국가 권력이 개인의 몸을 분류하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첫 번째는 연령에 따라 몸을 구분하는 것이며 두 번째는 질환과 상태에 따라 몸을 구분하는 것이다. 우선 연령에 따라 몸을 구분한 것을 살펴보면 신라 중고기 군역은 주로 15세에서 59세 또는 60세까지 연령의 일반 남성 민에게 부과되었다고 한다. 전근대 사회에서는 연령이 과세 기준의 하나였기 때문에 일반 민을 구분할 때 연령을 중요시했다. 신라의 경우 나이에 따라 소, 추, 조, 정, 제, 노 총 6단계로 분류했는데 이는 총 5단계인 당보다 총 6단계인 일본과 더 유사하다. 정남에 해당하는 연령은 시대와 자료에 따라 약간씩 다르게 나타나기도 한다. 신라가 당에 비해 이른 나이를 성인으로 취급한 것은 신라의 인구 규모가 당의 인구 규모에 비해 절대적으로 작기 때문이다. 중국의 경우 연령 이외에 신장도 하나의 척도였지만 신라에서도 신장이 군역의 조건이었는지는 기록이 없기 때문에 알 수 없다. 다음으로는 질환과 상태에 따라 몸을 구분해보자. 적합한 나이가 되었다고 모두 군역의 대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병사의 몸이 될 수 없는 신체의 경우 군역을 면제해주었다. 이에 대한 신라의 기록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같은 시기의 당과 일본의 경우를 살펴봄으로써 신라의 경우를 유추해보자. 당의 경우 군역을 면제받는 조건으로 연령 뿐 아니라 잔질, 폐질, 독질 이라는 질병 개념을 사용했다. 8세기 초 일본 역시 당의 방식을 수용하여 잔질, 폐질, 독질로 몸을 분류하였다. 잔질, 폐질, 독질은 특정한 질병에 결렸거나, 그로 인한 후유증 또는 다른 원인으로 몸이 망가진 손상 정도를 기준으로 나누어졌다. 이때 잔질은 노동력을 완전히 상실하지 않은 예비 인력으로 폐질과 독질과는 달리 분류되었다. 일본의 율령이 제정 초기 신라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신라가 태종무열왕 때부터 당나라 식으로 율령을 대폭 개정하기 시작했으므로 당의 율령 체계가 신라에 수용되었으며 이것이 후에 일본의 율령 체계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당의 율령에서 역의 면제 조건으로 잔질, 독질, 폐질을 정한 것이 태종 무열왕 대에 신라에 수용되었고 이것이 일본의 율령에까지 영향을 미쳐 8세기 초 일본의 율령에까지 남아있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질병에 따른 몸의 분류법은 고려와 조선 시대까지 이어졌다. 고려 시대 때 80세 이상의 고령자와 함께 폐질자와 독질자가 진휼대상이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권력이 일반 민의 몸을 어떻게 분류했는지 알 수 있다. 또한 조선 초기 법전인 <경국대전>에 역의 면제 조건으로 연령과 함께 독질과 폐질을 기준으로 삼은 것으로 보아 이러한 분류법이 조선시대까지 지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전근대 사회에서 병사로 선발된 자는 신체 건강한 남자였는데 그 중에서도 중노동에 익숙한 농민의 몸을 가장 선호했다. 농민에서 병사로 전환된 몸이 질병에 걸렸을 때 그 몸은 군사 의학으로 치료를 받는다. 전쟁기의 군사 의학은 군진 의학으로 독특하게 발전하는데 이때의 의학 처치법은 평화로울 때의 의학 처치법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이는 <향약집성방>의 처방을 보면 알 수 있다. <항약집성방>의 금창 치료법을 통해 군진 의학의 치료 약재로 급박한 전시 상황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 주로 쓰이며 우수한 지혈제와 진통 해열제인 자석이 중요한 약재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밖에도 두발과 우황도 약재로 사용되었다. 두발은 동상 치료제, 성병 치료제, 지혈제로도 쓰였으며 기침, 이질, 장티푸스로 인한 설사 증상, 종기 등을 치료하는데 사용되었다. 우황은 놀란 것을 치료하거나 열과 심한 통증을 가라앉히는데 주로 사용되었다. 특히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사람의 머리카락을 약재로 사용하는 치료법은 군진 의학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향약집성방>에 인용된 <병부수집방>의 처방 내용으로 대규모 인간 집단의 공동생활을 관리하며 전시라는 비상 상황에서 사용되는 군진 의학의 특징을 알 수 있다. 우선 한 가지 약물을 사용하는 단방 위주의 처방이 주류를 이루었다. 또한 소의 오줌, 말의 똥, 말의 이빨, 참대기름, 식초, 달걀, 좁쌀 등 전시 상황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약물들이 주로 쓰였다. 두발 등을 이용한 치료법이 발달한 것도 손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약을 조제하는 것에 관해서는 노동력과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탕제보다는 다량의 약을 미리 조제해 둘 수 있는 산제와 환제가 주로 사용되었다. 약물이 필요 없는 침이나 뜸도 유용하게 쓰였다. 간단한 도구만을 사용하기 때문에 이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을 것이다. 전투중인 군대에게 있어 치명적인 전염병에 대한 예방 조치도 발달했었다. 미리 조제해 둔 약으로 유행성 전염병을 막고자 했으며 이를 통해 병사들에게 전염병에 대한 심리적 안정감을 주고자 했다. 군진 의학에 소아과 처방이 기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점령 또는 주둔지의 민심 안정에도 군진 의학이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군대가 점령 또는 주둔하는 지역의 민간인들과의 관계를 우호적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민간의 아픈 아이를 치료해 준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고 싶은 말 좀 더 업그레이드하여 자료를 보완하여, 과제물을 꼼꼼하게 정성을 들어 작성했습니다. 위 자료 요약정리 잘되어 있으니 잘 참고하시어 학업에 나날이 발전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 구입자 분의 앞날에 항상 무궁한 발전과 행복과 행운이 깃들기를 홧팅 키워드 군진, 연령, 군역, 질병, 경우, 권력 |
2018년 10월 27일 토요일
실험 RLC 대역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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