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23일 토요일

경영인으로서 존경하는 인물과 그의 리더십

경영인으로서 존경하는 인물과 그의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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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인으로서 존경하는 인물과 그의 리더십
위기는 인물을 키운다. 위기 속의 인물 '라탄 타타'
초저가 자동차 혁명을 이끌어 내어 인도 내에서 주목을 받은 바 있는 라탄 타타 회장은 그는 그룹 창업주인 잠세트지 타타의 증손자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 드는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는 그는 1991년 회장에 취임한 뒤 자동차와 철강, 정보기술(IT) 등을 집중 육성해 타타가 인도 최 재벌 입지를 굳히는 데 기여했다. 타타컨설턴시서비스(TCS)를 세계 IT 서비스기업 최고의 반열에 올린 것도, 경난에 빠진 철강회사 타타스 틸을 알짜배기 철강업체로 살려내는 등 경영적 능력은 크게 이미 인정받았던 이력이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2004년 한국의 우상용차를 인수하는가 하면, 세계적 메이커 테틀리(Tetley Tea)와 네덜란드 최강 철강기업 코러스를 인수하는 등 세계적으로 주목 받는 인수합병(M&A)을 성공시켰다. 2008년 5월에는 유명 자동차 브랜드인 랜드로버와 재규어를 인수했다. 이에 따라 미국의 경제전문잡지 <포춘>은 그를'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비즈니스맨 25인' 에 선정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는 70세에 은퇴하기로 했었지만, 73세에 회장으로 역임하는 아이러니를 보인 적이 있다. 타타 정관에 따르면 타타 회장은 2007년에 은퇴 했어야 했지만, 마당한 후계자를 찾지 못하고 로벌 금융위기가 찾아온 탓에 임기를 연장해야 했다. 이사회는 정관 규정을 75세로 수정했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순탄치 않았던 라탄 타타는 일곱 살 때 부모가 이혼해 그와 두 살 어린 남동생 지미는 할머니 밑에서 자라야 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지만 정신적으로는 결핍된 생활이었다. 고향 뭄바이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그는 건축학을 전공하기 위해 미국 코넬학교로 떠난다. 인도 재벌 집안의 자제지만 미국 유학생활은 경제적으로 어려웠다. 접시 닦기 등 안 해본아르바이트가 없을 정도다. 당시에는 인도 정부가 외환 송금을 규제해 고국으로부터 송금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학 졸업 후 그는 미국에 남아 건축가의 길을 가려 고 했으나, 1962년 할머니가 위독해 급히 귀국한 후 타타 스틸에 첫 발령을 받는다. 철강 생산 현장에서 그는 여느 철강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철광석을 져나르기도 하고 뜨거운 용광로 앞에서 일하기도 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경인의 길을 걷게 된 것은 1971년이 되어서다. 타타그룹 자회사인 가전업체 넬코 (Nelco)와 섬유업체 엠프레스스(Empress Mills)의 경영을 맡은 것이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1991년 그는 타타그룹의 새 회장으로 지명된다. 그가 회장에 취임한 1991년은 공교롭게도 인도 경제가 세계를 향해 문을 연해다. 글로벌 기업들이 인도 시장에 들어오고 수십 년간 규제와 보호막 속에 있던 인도 기업들은 갑자기 경쟁의 바다에 던져졌다. 인도 최고 그룹이었던 타타도 마찬가지다. 타타로서는 새로운 시에 맞는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했던 것이다.
라탄 회장의 리더십에 힘입어 타타그룹은 1990년 중반 이후 눈에 띄게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변모했다. 그의 꿈은 자동차를 핵심 산업으로 육성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시멘트, 의학, 섬유 등 경쟁력이 떨어지는 부문은 과감히 매각하고, 자동차와 철강 등 핵심 사업에 집중했다. 자동차를 핵심 사업으로 추진하겠다는 라탄 회장의 의지는 타타자동차를 승용차 시장에 뛰어들게 했다. 그 동안 규제 때문에 타타자동차는 트럭 등 상용차만 생산 할 수 있었다. 그는 이제 외국 자동차사들의 협력 없이 순수 토종 승용차를 만들어보자는 야무진 꿈을 꾸었다. 그러나 주위의 반대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승용차를 만들 만한 기술과 자금이 없다고 했다. 설사 토종 자동차 생산에 성공한다 해도 품질에서 딸려 팔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온갖 반에도 불구하고 1998년에 자체 기술로 만든 소형 승용차 '인디카(Indica)'가 출시되었다. 인도의 첫 순수 국산 승용차다. 그러나 문제는 품질이었다. 현대 자동차나 마루티스즈키와 같은 경쟁 차종에 비해 품질이 떨어져 목표 했던 판매량의 절반도 팔지 못한 채 1998년과 1999년에 막한 적자를 냈다. 라탄 회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강도 높은 구조 조정에 들어갔다. 종업원 수를 40%나 감원하고, 부품 하청업체도 절반 수준인 600여 개로 줄이는 등 조직 슬림화를 이뤄냈다. 결국 '인디카' 와 2002년 새로 출시 된 준중형차 '인디고(Indigo)' 등이 인도 승용차 시장의 20%를 점하며, 그의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 타타 자동차가 마루티자동차와 현자동차에 이어 인도 승용차 시장 3위로 도약한 것이다. 세계 초저가 자동차 '나노' 프로젝트도 라탄 회장의 아이디어와 추진력의 결실이다. 나노는 인도인들에 한 애정의 결과이다. 복잡한 길거리에서 오토바이 한 에 아이들까지 태우고 온 가족이 위태롭게 가는 모습을 본 그는 좀 더 안전하게 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저렴한 승용차를 만들겠다는 결심을 한다. 이 역시 불가능하다며 모두가 반했지만, 나노는 결국 출시됐다. 애국심에서 시작한 나노 프로젝트가 세계 자동차시장에 새바람을 몰고 왔다. 기업의 덩치를 폭 키운 것은 물론 경쟁력과 효율성을 높고, 타타그룹이 로벌 기업의 명성을 얻는데 많은 기여를 했다. 그는 자수성가한 기업인이 아니다. 그럼에도 위험을 피하지 않는 기업가 정신과 순풍을 탈 줄 아는 능력, 확고한 결단력, 미래를 내다 볼 수 있는 통찰력 등은 오늘날의 타타가 있게 한 결 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리더십의 이론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특성이론에 따라 리더는 타고나는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의 리더쉽은 잠세트지 타타의 증손자 라는 점에 있어서 물려 받은 기질적인 요인이라는 추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업 현장에서 직접 발로 뛰었던 그는 상황에 의해 만들어진, 그리고 어려움에 대해 타파하는 방법을 몸소 익힌 상황형 리더일 수 있겠다. 현대로서는 서번트 리더쉽, 민주적 리더쉽이 더욱 더 효용적이라는 의견들도 나오고 있는 바이지만, 이사회 및 타타 그룹이 바랐던 바대로 '위대한 1인'에 의한 판단, 오더는 경영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인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 시켜주는 사례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모두가 반대하는 프로젝트에는 그 반대의 이유가 있을 것으로 보이나, 경영인으로서 책임을 질 수 있다는 책임감이 있거나, 해당 사업에 대한 확고한 신념 및 계획이 있다면 경영인으로서의 도전은 큰 귀감과 성공요인이 될 수 있으리라는 깨달음을 준다.

하고 싶은 말
레포트 구매 이후, 본론 내용만 잘 숙지하시고, 말만 바꿔서 쓰세요. 이후 서론은 어떤 레포트 글인지 소개하는 글을 쓰시고, 결론은 나의 생각 위주로 정리하시면 좋은 점수 받습니다.

키워드
리더십, 경영인, 인물, 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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