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25일 일요일

엘리코헨의 삶과 죽음

엘리코헨의 삶과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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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유대인은 매사에 치밀하고 효율성을 높이 산다. 이스라엘 첩보요원의 정교한 공작 역량이 입증 사례다. "기만으로 전쟁을 수행한다.(By way of deception. thou shalt do war)"는 이스라엘의 정보기관 모사드의 슬로건이다. 이 슬로건에 꼭 들어맞는 간첩이 있었다. 엘리 코헨은 근대 첩보사의 가장 뛰어난 스파이로 평가 받는다.
코헨은 1924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어 태어난 시리아계 유대인이다. 독실한 유대교 신자였던 그는 랍비를 꿈꾼 그는 어린 시절 수학과 어학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고, 13살에 선물로 받은 카메라가 인연이 되어 사진 촬영과 현상기술을 습득했다. 코헨은 20세가 되던 44년 팔레스타인에서 조국건설운동단체인 유대 시오니스트 청년단에 입단했다. 그는 이집트에 남아서 암호명 "수산나"로 이집트 안에서 암약하는 스파이 조직 "하가나"에 가담하여 이집트와 미국, 영국 등 다른 서방국가들과의 관계를 방해하기 위한 정보조직의 일원으로 활약했다.
1956년, 엘리는 이스라엘 스파이로 발각되어 추방되었다. 이스라엘로 추방된 그는 1년 뒤인 1957년엔 이스라엘 군 방첩대 분석관으로 복무했다. 엘리의 상사들은 그의 아랍인과 유사한 용모, 아랍어에 능숙한 점을 감안하여 그를 시리아의 다마스쿠스로 파견 보내기로 하였다. 시리아의 방첩기관의 눈을 피하기 위하여 그는 이슬람 연구를 하는 대학생 신분으로 아랍인이 많이 살고 있는 나자레로 갔다. 그곳에서 그는 코란의 교리를 배우며 이스라엘 전역에 있는 회교사원을 순례하고 시리아의 역사와 경제, 행정, 지리, 시리아 특유의 아랍어를 훈련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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