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31일 화요일

대통령대통령의 이념, 대통령의 권위, 대통령의 자질, 이승만 대통령의 통치철학(정치철학), 박정희 대통령의 통치철학(정치철학), 김대중 대통령의 통치철학(정치철학), 노무현 대통령의 통치철학(정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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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이념, 대통령의 권위, 대통령의 자질, 이승만 대통령의 통치철학(정치철학), 박정희.hwp


목차
Ⅰ. 서론

Ⅱ. 대통령의 이념

Ⅲ. 대통령의 권위
1. 대통령의 신분
2. 대통령의 특권과 책임
3. 대통령의 헌법적 지위

Ⅳ. 대통령의 자질

Ⅴ. 이승만 대통령의 통치철학(정치철학)

Ⅵ. 박정희 대통령의 통치철학(정치철학)

Ⅶ. 김대중 대통령의 통치철학(정치철학)

Ⅷ. 노무현 대통령의 통치철학(정치철학)
1. 새로운 정치 양상
2. 균열을 봉합해야

Ⅸ. 결론

참고문헌

본문
Ⅰ. 서론

해방3년의 정치과정에서 냉각된 미소관계로 인해 분단이 고정되고 남북 사이의 정치적 대립이 불가피하게 되면서 이승만 박사와 한민당은 반소반공을 내세우며, 그래도 남한만이라도 북한과 소련의 공산주의로부터 지켜 남한을 미국과 같은 민주주의 국가로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이승만과 그 추종세력은 당시 반소반공을 내세운 미국의 세계전략에 충실한 한국인 동반자로서 공산주의의 위협과 점령으로부터 우선 38이남 지역만이라도 구하기 위해서는 우선 남한만의 정부수립 즉, '건국'이 필요하다고 국민들을 설득했다. 이른 바 공산주의세력에 대항하는 '건국'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이승만세력들은 그것을 하나의 "목적가치"(end-value)로 정하여, 각종 술수와 계책을 동원하였던 것이다. 그 결과 건국은 하나의 목적가치로서 국민들로부터 상당한 호응을 받았고, 여기에 이승만의 개인적 카리스마가 더해져 그로 하여금 어렵지 않게 집권과 권위주의적 독재로 나가도록 작용했다.
한 마디로, 이승만과 그의 추종세력들에 의한 "자유민주주의의 정치"(the politics of liberal democracy)는 민주주의가 공산독재에 대척되는 목적가치로서 그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이끌어내고 1공화국 정치체제에 대한 지지를 동원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한국정치 내부구조와 그 정치문화 자체를 민주적으로 정착시켜 나가는 데는 뚜렷한 기여를 하지 못했다. 이승만 시대를 주름잡았던 상층 파워엘리트들은 대부분 친일세력에 연결되어 있었고, 자유와 민주의 이름으로 불법탈법을 일삼았던 비도덕적인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자연히 권위주의적 정치문화는 그대로 온존하면서 천박한 권력정치를 뒷받침하는 가운데 이승만과 그 추종세력들은 다만 민주적 정치발전에 필수적인 헌법이나 정당, 선거제도 등 근대적 정치제도들을 한국정치에 도입하는데 일정한 기여를 했다. 따라서 이승만대통령시기와 바로 뒤의 짧은 장면총리 시기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는 "형식적 민주화"(formal democratization)의 단계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승만이 하야한 후 잠시 동안 존재했던 제2공화국의 민주당정부를 군사쿠데타로 붕괴시키고 권력을 장악했던 박정희와 그 추종세력들은 부유하고 강대한 민주주의국가를 건설한다는 공약과 비젼을 내세우며 역시 "자유민주주의의 정치"를 포기하지 않았다. 물론 박정희시대는 분명 개발독재시대였고, 정치적 자유와 언론의 자유가 크게 제약 당했던 시기였다. 박정희와 그의 지지자들은 가난에 찌든 당시의 한국사회는 민주주의를 실천하기는커녕 공산주의의 위협에 허약하기 짝이 없다고 진단하고 무엇보다도 먼저 경제적 근대화를 강력하게 추진하였다.
박정희와 그의 추종세력에게 있어 정치는 일사불란한 군사작전과도 같은 합목적적 프로젝트였고, 보릿고개에 허덕이는 백성들을 먹여 살리는 가부장적인 위민(爲民)의 치였다. 그리고 그들은 정당간 자유로운 경쟁이 보장되는 의회제도나 지식인들의 양심의 자유, 사상의 자유, 그리고 학생들의 반독재 시위는 선진부국에서나 누릴 수 있는 여유 혹은 사치라고 여겼다. 그들은 심하게 다쳐 당장 어찌할 바 모르는 응급환자들에게 전권을 휘두르는 당직의사와도 같은 존재들로 "당장 먹여 살리고 안정을 보장해주는 일"에 전심하였다. 그래서 박정희 시대의 정치는 민주적 정치발전에 긴요한 물적 기반이 마련되었던 시기였다. 따라서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의 정치는 박정희 시대를 거치는 동안 "물질적 민주화"(material democratization)의 단계를 겪었다고 할 수 있다.
박정희 시대 이후에 집권했던 전두환/노태우 대통령은 다같이 12.12정변 및 5.18광주'사태'의 주모자들이었기 때문에 양인 모두 권력쟁취의 비합법성과 비도덕성이라는 혹독한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박정희 대통령 시기의 "물질적 민주화" 단계이후, 민주주의를 한층 더 성숙하게 가꾸어 나가야 했을 그들에게 있어 폭력적 정권쟁취와 무모한 인명살상으로 인한 도덕성의 결핍은 매우 무거운 짐이었다. 이들이 각각 평화적 정권교체를 실천하고 대통령직선제를 도입하여 제도적 차원의 민주주의 발전에 일정부분 기여했음을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양인 모두 선배 정치군인이었던 박정희보다 민주주의를 더 많이 배웠다지만, 경제근대화 이후 한국정치의 비젼을 제대로 제시하지도 못했고, 재임 중 수천억 원에 이르는 불법 정치자금을 '관행'이란 명목으로 거두어들이는 '범죄'를 저지름으로써 한국정치를 더욱더 비리와 부도덕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한편,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은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올라 취임초기 국민들로부터 많은 지지와 기대를 받으면서 최고지도자의 임무를 떠맡았지만, 대통령으로서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했

참고문헌
ⅰ. 강준식(2011), 대통령이야, 예스위캔
ⅱ. 김영빈(1972), 박대통령의 통치철학, 세대사
ⅲ. 이정윤(1997), 역대 대통령의 통치이념과 리더십에 대한 고찰 년 한국군사학회
ⅳ. 윤여준(2011), 대통령의 자격, 메디치미디어
ⅴ. 월러 R. 뉴웰 저, 박수철 역(2012), 대통령의 조건, 21세기북스
ⅵ. 전휘용, 전찬미 외 3명(2012), 우리가 진짜 원하는 대통령, 북앤컴퍼니

키워드
대통령, 이승만, 통치철학, 정치철학,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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